너무 가까이 마주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마치 잠에서 깨어나 커튼을 젖힐 때처럼 뜻하지 않은 광선이 눈으로 자비 없이 들이닥치는 것과 같다. 미간끼리 부딪히고 순간 주변이 모두 허연 빙판으로 가득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테다. 함부로 발을 내딛었다간 다치기 일쑤다. 그러나 한 발 두 발 물러서 그늘로 들어가 한숨돌리고 나면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그 사람의, 무수한 이야기와 맥락이 드리우곤 해서 매운 겨울은 달아나고 따듯한 봄이 포옹 안겨준다. 그렇게 감정은 휘발되고 오해는 눈녹듯 사라진다. 정제된 관계가 남는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누구도 그러한 계절을 피할 수 없다. 결코 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계절에 맞춰 옷을 갈아입을 수밖에.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차가운 대지에서 봄이 오는 새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