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비의 비망록

정직하게 삶을 바라보고 부끄럼 없이 살아보려는 사내

전시

지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_어제(@yes___terday) 작가님(설학영 작가님)의 전시_수유 카페 키치(Kitsch)

몽비, 2020. 10. 5. 12:00

 

 

생명을 얻은 이래로 세상 모든 것들을 느낀다. 들숨과 날숨, 여미는 바람, 연두빛 찰랑이는 청보리밭, 속 시원히 부딪히는 파도 소리. 시끌벅적한 사회 속에서 겪는 경험도 느낌의 일부다. 지식도 교양도 보고 배운 전부가 의식과 무의식을 구분하지 않고 쌓여간다. 살아가는 날이 길수록 익숙함은 늘고 낯섦은 줄어든다.

이제껏 휙 하고 지나쳤던 들꽃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는가. 마냥 어려웠던 시가 훗날 당신의 눈물을 훔친 적이 있는가. 어느 날 엄마의 마음이 이해된 적이 있는가. 익숙함은 다시 낯선 씨앗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순환한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 기시감(데자뷰)은 다시 미시감(자메뷰)을 낳고 미시감은 다시 기시감을 낳는다.

 

"그림뿐만 아니라 사진을 하셨구나."

@yes___terday 작가님의 전시 작품을 보자마자 단박에 든 생각이다. 망원렌즈 고수의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프레임에 얽매이기보다 프레임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마치 익숙함이 낯섦을 낳듯이. 그런데 그 낯섦이 관람자에게 날카롭게 다가와 어느 한 구석을 찌른다(푼크툼). 고이 접힌 기억이 펼쳐진다. 익숙함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작품의 배치와 순서, 레이아웃에 눈길이 간다. 낯설게 보려면 평소 보는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 가까이-멀게 / 아래에서-위에서 /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모아보기, 전시의 설계 총체는 낯섦을 위한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사진기법에서 낯설게 보기 연습이 떠오른다.

 

 

10월 4일, 전시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작품 설명을 접한 점이 참 아쉽다. 전시를 오픈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작품에 감탄만 하고 갔다. 쑥스러움을 타는 탓에 작가님과 담소는 나누지 못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작품과 대화하러 온 것이다. 전시 마지막 날 찾아가 홀로 감상에 젖었다.

작가님의 전시 설명이 반가웠다. 내가 생각하는 사진과 일맥상통 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을 한 마디로 '관계'라고 생각한다. 촬영자-피사체-배경 간 물리적 거리의 관계부터 인쇄된 작품과 놓여질 공간의 시각적 이해 관계까지. 익숙한 풍경도 감정, 동행하는 사람, 시간과 계절이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가. 작품을 낯설게 바라보기 위해 주변 사물과 관계에 유념하여 바라보았다.

 

 

카페 내부는 그의 집이 된다.

캔버스는 창문이 된다.

창문 앞은 벚꽃이,

화분과 그림은 서로를 그리는 사람의 모습이,

나무끼리 간지럽히는 모습같은 그림자는

어항에 담긴 물고기와 활엽수 숲으로,

스테인드 글라스는 석양이 된다.

 


키치에서 어느덧 다섯 번째 전시가 막을 내렸다.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아늑한 분위기 그리고 좋은 사람들 덕분에 자주 오갔다. 이번 전시가 흘러가기까지 그간 느낀 바가 많다. 먼저 작가님들의 열정과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늘 안부를 먼저 물어봐 주시고 친절하신 키치 회장님과 요정님, 알바님께 감사를 전한다. 텐션을 못 받아쳐서 매번 죄송스럽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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