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비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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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2020 리서처 양성과정 2기 도전기 | 간절함과 긴장 사이.

몽비, 2020. 12. 10. 23:35

잠을 설쳤다. 겨우 잠에 들었지만 결국 꿈을 꾸었다. 길고 특이한 꿈이었다. 하늘을 나는 꿈이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바라던 일이 이뤄진다는 꿈이라고 한다. 면접 날 아침, 시작이 좋다.

꿈과 다르게 하늘이 어둡다. 진눈깨비가 내릴 예정이라고 한다. 늦은 아침을 먹은 지 얼마 안 됐는데 시곗바늘은 출발시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뭐 빠뜨린 건 없는지 구두를 낑낑거리며 신고 불안한 걸음을 내딛는다. 스마트폰은 까먹어도 준비한 멘트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내 마음을 언제 엿듣고 있었던지 해는 구름을 비집고 고개를 내밀었다. 위로의 한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14시 15분, 승객이 거의 없을 시간이다. 4호선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는 길 내내 엉덩이를 붙일 수 있었다. 긴장일까 적응일까, 지하철 시트에 몸을 싣는 동안 계속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대로 눈을 감고 1기에 도전했던 면접장 모습을 토대로 미리 보기 연습을 했다. 심장은 요동이기보다 태동이었다. 빠르게 뛰지는 않고 명치 부근에 주먹질을 해댔다. 강남은 익숙해도 양재역 부근은 경험이 별로 없다. 낯선 장소가 주는 공기가 긴장을 더한다.

매트릭스 리서치 앞에 당도했을 때 출입문을 앞을 두고 그림자처럼 서성거리는 분들을 보았다. 동료애가 샘솟아 말을 걸까 고민했다가도 괜히 방해가 될까 그만뒀다. 들어가기 직전에 한 분과 대화를 잠깐 나눴다.

 

40분이 되자마자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내자에게 대기실로 인도받았다. 한 3분 앉아 있었을까, 안내자분이 면접실로 안내했다. 또렷한 기억은 여기까지다. 온통 흰 벽으로 둘러쌓인 인간미 없는 강의실, 흰 테이블, 면접관의 푸른 시선, 그 아래 깔린 4명의 지원서. 이 모든 창백함이 압도하여 머리를 물들였다. 사방의 흰색은 팽창하여 나를 한 없이 작은 존재로 만들었다.



그래도 기억나는 것을 적어보려고 한다.


- 1분 자기소개
- 본가가 지방인 두 면접자에게 먼저 질문이 떨어졌다. "집이 멀어도 양성과정과 실제 업무에 차질이 없으시겠냐."를 물으셨다.
- 그 다음 나에게 곧, "광고홍보학과를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리서치 직무를 선택하게 되셨나."를 물으셨다.
- "마케팅 리서치를 지원한 세 분은 사회조사 업무를 맡게 되어도 괜찮겠느냐."
- 여성 면접관이 옆에 계신 남성 면접관에게 질문을 요구했다. 남성 면접관은 "왜 이 양성과정을 들어야 하는지 한 마디로 얘기해달라."라고 주문하셨다.

- 마지막 할 말씀이 있냐고 '모두에게' 물었다.

심리학과와 마케팅을 복수전공하신 분, 대학원 연구실습과 직접 소비자 패널로 활동하신 분, 통계학을 전공하신 분. 나에게 질문이 끝나면 비로소 박동이 잦아들고 옆사람 얘기에 귀가 열린다. 나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들인 것 같다. 누구나 이와 같은 생각을 하나보다. 면접이 끝나고 바로 옆에 앉았던 참가자와 양재역까지 나란히 걸으며 면접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았다.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밖에 없는 것 같다고. 나 너무 긴장한 것 같다고. 한 가지 더 신기했던 점은 자신이 무척 긴장했지만 상대는 내가 긴장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점이다. 발표를 위해 단상에 올랐을 때도 팀원들이 했던 말이었다. 면접도 그런 줄 몰랐다.

 

 

푸념 섞인 이야기를 토해내듯 뱉고나서야 현실감각이 되돌아왔다. 그제야 지하철 방송이 들린다. "이번 역은 교대역입니다." 몇 정거장을 지나쳤는지도 헷갈린다. 먼 곳에서 찾아오신 면접자분은 시외버스를 타러가셨다. 이제 우리 손을 떠난 일이니 결과에 맡기자는 성숙한 태도를 남기고. 꼭 다시 뵙자는 희망이 이뤄지기를 바라면서.



손잡이가 지하철 진동으로 정처 없이 흔들린다. 긴장이 풀린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 본시 지하철에서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할지 모르는데, 한편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이 초점을 잃게 하여 멍을 때렸다. 눈에 초점을 되찾을 때라야 수유역에 도착했다. 양성과정 합격과 이후의 입사를 기리면서 근처 알라딘에서 '디테일의 힘'을 구입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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