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비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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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메마른 글, 생기 돋는 글_스승님과 알뜰살뜰 말글살이

몽비, 2020. 11. 2. 18:06

나의 글은 어느새 메말라 있었다. 지식을 쌓기 위한 노력이 되려 글쓰기에 악영향을 미쳤다. 사회과학 서적만 열심히 들여다본 것이 그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번역서로, 짜임새 있는 정보였지 살아 있는 글은 아니었던 것이다. 내 말글살이에 물을 주고 있는 줄 알았으나 오히려 해를 가하고 있었다. 표현은 보고 듣고 소화한 만큼 배출되는데, 나도 어느새 건조한 문체로 글을 쓰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어떻게 하면 글에 생기가 돋을까 거듭 고민했다.

절실했다. 고민을 방치하지 않고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차근차근 해결하기로 했다. 운이 좋게도 달포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독서모임을 가졌다.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2012, 마로니에북스) 전 권을 스무 개월에 걸쳐 읽기로 계획했다. 독서모임을 권유해 주신 지인과 박경리 선생님 덕분에 살아 있는 글이 무엇인지 자연 분별하는 시각이 생겼다. 이제는 '번역체'가 눈에 밟혀 내용을 집중하기 힘들다. 되려 불편해졌다. 뿌듯한 불편함이다. 눈으로 인식할 수 있으니 손으로 쓰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있는 사람이기에 응당 살아있는 글을 쓰고 싶어진 것이다.


별안간 스승님을 찾아뵀다. 올해 들어 블로그에 쓰고 페이스북에 공유했던 글 중에 몇 가지를 골라서 첨삭을 받았다. 여태 읽은 책도 별로 없고 쓴 글도 많지 않은 상태지만 알뜰살뜰 말글살이를 챙기고 싶었다. 첨삭이라면 고등학교 논술 수업에서 받아 본 것이 전부였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괜히 커피 탓으로 돌려본다. 글은 본디 독자를 전제함을 알면서도 으슬으슬 떨렸다. 두려움 반 설레임 반이었다. 글쓰기 능력은 글을 세상에 공개하고 독자와 소통하고 꾸준히 다듬어야 좋아진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었다.

 

스승님은 첨삭에 앞서 비트겐슈타인*의 경구로 말문을 여셨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_비트겐슈타인

 

이어서,

"사람은 말과 글로 살아간다. 확장해 말하면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

고 덧붙이셨다.

 


함께 글을 낭독했더니 신기하게도 어색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맞춤법은 양호했으나 단어 사용이 분명하지 않았다. 꼭 맞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과 대충 맞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의 차이는 반딧불과 번갯불의 차이만큼 큰 차이다. 어휘력도 부족하거니와 단어의 자연스러운 쓰임새를 잘 몰랐던 것이다. 글을 고치고 다듬었더니 문장의 연결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뜻이 분명해졌다. 내가 포스팅 했던 문장을 예로 들면,

 

(수정 전) '그렇게 1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는데, 동승했던 아주머니가 비웃으면서 떠나셨다.'

(수정 후) '그렇게 1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는데, 동승했던 아주머니가 들으라는 듯 혼잣말처럼 비아냥거렸다.'

 

'비웃다'와 '비아냥거렸다.'은 뜻과 어감의 차이가 있다. '비아냥거렸다.' 앞에 '들으라는 듯'을 붙여 더 분명하게 묘사됐다. 그 밖에도 '혼잣말처럼 비아냥거렸다.',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비아냥거렸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살아있는 글은 읽을 때도 자연스럽다. 낭독하면 맛이 있어서 침이 고인다. 읽어 내려갈 때도 숨이 차지 않는다. 눈으로 보아도 입으로 소리내어도 귀로 들어보아도 불편함이 없다. 적절한 단어의 쓰임, 정갈한 글의 구성과 운율감 있는 문장은 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신선하고 궁합이 좋은 재료로 요리한 음식이 훨씬 맛이 좋지 않은가.


스승님은 볼펜으로 문장을 고치고 계셨다. 잠깐 설명하실 때면 나는 샤프로 메모했다. 한 번 종이에 묻으면 지워지지 않는 잉크와 언제든 지울 수 있는 흑연이 대비된다. 잉크는 자신감이 넘치듯 미끄러졌고 흑연은 숫기 없는 사내처럼 주뼛거리고 주저함이 묻어났다. 여지껏 말과 글을 등한시한 결과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기 전에 최소한 살아온 만큼 말글살이에 힘을 써야겠다.

 


*비트겐슈타인 :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독일어: 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1889년 4월 26일 ~ 1951년 4월 29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빈 출생이다. 오스트리아와 영국에서 활동한 철학자이며, 논리학수학 철학심리 철학언어 철학 분야에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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