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비의 비망록

정직하게 삶을 바라보고 부끄럼 없이 살아보려는 사내

기록

반성이 가져다주는 설득의 힘

몽비, 2020. 9. 26. 16:41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곳 없네


바람만 불면 그 매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곳 없네

- <가시나무> (조성모), 2.5집 《Classic》 (2000년)

(원곡 : <가시나무> (시인과 촌장) 1988년 4월 발매된 3집 《숲》의 타이틀 곡. 작사, 작곡 : 하덕규)



음료 한 모금에 행복할 때가 있고 밤샘 대화로 즐거울 때도 있고 그냥 기분이 좋아서 함박 웃음을 지을 때도 있다. 반대로 사소한 일에 불같이 화를 낼 때도 있고 중요한 자리에서 말실수를 저질러 스스로에게 실망할 때도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

이런 내 모습이 존재했기에 현재의 내가 있다. 반성은 인생을 다듬는다. 자신의 과거 무언가가 부끄럽다면 내가 성장했다는 증거로 여길만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정말 왜 그랬을까?' 할만한 기억들이 많다. 누구나 흑역사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너무 미워하지 말자. 누구나 그런 과정을 겪는다. 여기, 자기 자신을 보고 괴로워 하는 이가 또 있다. 그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자.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자화상」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 (1948)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저항시인 윤동주의 시들을 모은 유고시집이다. 1948년 강처중 정병욱 등의 도움으로 처음 출판됐다.

 

 

윤동주 시인처럼 내 안의 다른 나를 미워해보고 가여워해보고 그리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남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지만 자신에게는 혹독한 잣대를 두었던 사람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우연히 내 과거 모습이 비춰지는 사람을 보게 된다.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대개 그렇다. 그런데 조언을 구한 상대는 대부분 정답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까 정말로 조언을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적절한 질문을 해 주어 그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질문하고 잘 들어주자.'는 착해 빠져 보이고 상투적인 교훈이라 잊어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서 보면 복잡한 내 모습이 정돈 돼 보이지만, 지금 내 앞의 상대는 바람이 불어 무수히 많은 가시나무 가지가 부대껴서 괴로워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리고선 대부분은 상대에게 과거 자신이 극복한 사례를 상대에게 강요한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며 일관적인 사람인 척하는 사실이 놀랍다. 실은 무수히 많은 자아로 가득찬, 마치 가시나무와 다를 바가 없는데도 말이다.


내 경험은 절대가 아니다. 진지하게 성찰한 내용이 아닌 이상 그저 과거에 불과하다. 손가락질하며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는 모습은 상대를 달아나도록 하게 만든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행동은 경청뿐이다. 즉, 공감이다. 서로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대화는 오해가 쌓이기 쉽다. 그래서 상대에 관한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이제 내가 이야기할 순서와 시간이 주어졌다면 상대방에게 반성록을 차분히 들려주는 편이 좋다. 과거의 나는 이런 모습이었고 어떻게 해서 이렇게 바뀌었다고 전달하는 것이다. 스스로 낭독하는 반성록은 상대를 직접 찌르지 않으면서도 내 배경을 설명하고 자연스럽게 설득하는 힘이 있다.



가시나무에서 '당신'의 존재는 다름 아닌 화자 자신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 자신이 아닐까.

누구나 가시나무 한 그루쯤 갖고 있다. 누구에게나 거친 바람이 부는 시절이 있다. 수많은 상황에 부딪히고 그 속에서 충돌하는 자아 때문에 고통을 겪는 시절이 있는 것이다.

 

마음이 쓰라린 상대에게 과거의 나를 열심히 들먹이며 우쭐대고 자랑할 것이 아니다. 입이 근질거려도 차분히 상대 이야기를 끝까지 귀담아 들어야 한다. 상대방이 자신의 부정하고 싶은 모습을 인정하도록 도와야 한다. 진정 설득을 관철하기 위해선 상대에게 "너 거울 좀 보고다녀!" 라고 타이를 게 아니라 거울 앞에 서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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