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비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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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구름과 예술

몽비, 2020. 7. 12. 22:47

보통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산책을 한다. 그러다 예기치 못하게 날이 서는 문장이 머리를 스치고 간다. 뇌는 무언가로 채웠다가 비웠다가를 반복하면 더욱 창의적인 생각이 자리를 잡는다고 한다. 욕조에서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가 대표 예라 할 수 있겠다. 아인슈타인은 평생 바이올린과 함께 했다고.

이상하게 나도 그런 게 있더라. 바로 샤워와 산책이 그것이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산책을 나갔다. 아니 떠났다고 말하는 게 좋겠다. 생각의 길이만큼 산책하는 시간도 길고 짧다. 의자에 엉덩이를 박아넣고 자격증 공부하기가 힘들었다. 누군가 그랬다. 신체가 닿는 면적이 가장 작을 때 암기력이 가장 좋다고. 그래서 걸은 게다.

 

오늘부터 장마라고 했는데 먹구름은커녕 하늘이 드리웠다. 몽실몽실한 열기구같은 구름도 두둥실 떠다녔다. 마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골목에 주택 담벽에는 능소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 너머로 구름 모양은 제각기 달랐다. 여기서 문장이 불쑥 등장해 내 머리를 치고 갔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은 분명 실체가 있고 누구나 좋아한다. 그런데 저마다 좋아하는 이유가 다르다. 하지만 구름은 사실 가까이 가 보면 형체가 없다. 안개일 뿐이다. 예술도 그렇지 않나. '예술'이라는 단어는 명백히 존재하지만 막상 그 실체는 굉장히 추상인데다가 모양이 전부 다르다. 저마다의 다른 이유와 사조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언젠가, 미디어를 전공한 내 친구와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사진작가는 예술병을 싫어한다고 전했다. 그들은 무엇보다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추상의 단계를 저 하늘로 던져 올려 다른 사람들이 올려다 보되, 잡지 못하게 하는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제목조차 없던 전시물이 무책임하다고 생각이 든다.

 

머리를 비우기 위해 밖으로 나갔는데, 다시 채워서 돌아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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