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비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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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어떻게 위로하세요?_내 감정에 이름 붙이기

몽비, 2020. 7. 6. 13:56

어떻게 위로하세요?

누워서 허송세월 영상 시청하기. 친구와 주구장창 술판 버리기.
아, 저는 좀 찔립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은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째서인지 잠깐 기분이 좋았다가 이내 다시 우울해집니다.
심지어 몸이 망가져 있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는 죄책감이 들어요.

우리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회피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난 잠시 자존감이 낮은 거야.' 라고 말이에요.

근래에 자존감이라는 말이 비일비재 등장하면서 내 감정과 모습을 오로지 자존감이라는 단어로 퉁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나에게 울리는 고요한 파동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무엇이 내 호수에 돌을 던졌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책을 찾는 편입니다. 책은 언어를 주기 때문이에요. 언어는 현재 내가 느끼는 감정을 설명해 주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냥 스윽 읽다가 마음을 툭 치는 문장을 발견한 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 (제레드 쿠니 호바스) 에서는 인간이 텍스트를 읽어내리는 행동(시각)이 텍스트를 읽어 내리는 음성(청각)으로 인식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텍스트를 이해함으로써 자가진단을 할 수 있고 동시에 스스로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읽기 행위는 실로 많은 의미를 가집니다.

어쩌면 아픔이라는 것은 너무 많은 생각이 자신을 괴롭히게 되는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럴 때 표현하고 표출하지 않으면 더욱 아프지요. 그래서 표현을 도와줄 언어의 스펙트럼은 참으로 중요해집니다.

『쓸모없는 하소연』 (김민준) 뒷부분 작업노트1에서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엽니다.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가 지닌 세상의 한계를 의미한다.' 고요.


tvN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박완서 작가님에게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꺼냅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이름 모를 꽃이라고 쓴다. 작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꽃과 새와 나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마주하는 들꽃의 이름조차 모른 채 살아갑니다. 마치 평소에 겪는 내 아픔의 이름을 모른 채 지나가는 것처럼요.

우연일까요? 요조의 처방책에서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책,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로 처방해 줍니다. 요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책에 쓰여진 표현과 단어가 비로소 내것이 되면 정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고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는 말에 큰 동감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읽고 씁니다.
제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의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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